부처님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고행을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과거의 어떤 수행자도, 미래의 어떤 수행자도 자신과 같은 고행은 할 수 없을 것이라 하실 만큼 고행에 몰입하였다. 당시 인도 사람들은 고행을 함으로써 욕망을 억제하고 정신의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고행을 한 사람은 신비하고도 초인간적인 힘을 가지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6년에 걸친 극심한 고행을 통해서도 깨달을 수 없었고, 육체를 학대하는 것은 진정한 깨달음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고행을 포기하였다. 이때 싯달타 태자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상에서 수행자가 피해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다. 하나는 관능이 이끄는 대로 애욕에 탐닉하여 욕망과 쾌락에 빠지는 것이다. 이는 어리석은 범부들이 찬탄하는 것이며 수행자의 숭고한 목적에 무익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육체를 스스로 괴롭히는 것에 열중하여 고행에 빠지는 것이다. 이는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것으로 수행자의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는 무모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스스로에게도 이익이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을 주지 못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버려야 한다. 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의 길을 가겠다.' 중도는 양극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지, 양극단을 적당히 절충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부처님의 생애는 '위대한 포기'가 몇 번이나 있었다. 부귀와 영화가 보장된 왕위를 포기했고, 행복과 안락이 보장된 가정을 떠났으며, 모두가 믿는 당시 최고의 수행법을 포기하여 '최고의 고행자'라는 명예도 포기하였다. 이것은 세상 전부가 자신을 외면할지라도 옳은 것이라면 주저 없이 결단을 내리는 참된 수행자의 길을 보여준 것이다. 수행자 싯달타는 고행을 포기한 뒤 수자타 여인이 올리는 우유죽 공양을 받아 기운을 회복하고, 목동 스바스티카가 바친 부드럽고 향기로운 풀을 보리수 아래 깔고 그 위에 앉아서 굳은 다짐을 하였다. '내 여기서 위 없는 깨달음을 얻지 못 한다면 차라리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마침내 이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으리라!' 금강석보다 굳센 의지 때문인지 부처님은 드디어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이루셨고, 깨달으신 그 자리는 훗날 금강보좌(金剛寶座)라 불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