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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있는 아름다운 삶

보리심 0 6,983 2008.12.05 00:00
덕 있는 아름다운 삶


머리카락이 희다고 해서
덕 있는 노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이만 먹었다면
그는 부질없이 늙어버린 속 빈 늙은이

세상의 진실과 진정한 도리
불살생과 절제와 자제로써
번뇌를 말끔히 씻어버린 사람을
진정으로 덕 있는 노인이라 한다

배움이 적은 사람은 황소처럼 늙어간다
육신의 살은 찌지만 그의 지혜는 자라지 않는다.
 
<법구경>

 

젊었을 때 수행하지 않고
정신적인 보배를 얻어놓지 못한 사람은
고기 없는 못가의 늙은 백로처럼
쓸쓸히 죽어갈 것이다.

젊었을 때 수행하지 않고
정신적인 보배를 얻어놓지 못한 사람은
부러진 활처럼 누워
부질없이 지난 날을 탄식하리라.

나도 늙어 가는 지 밖으로 돌렸던
눈길을 요즘은 내 안으로
거두어들이고 있다.
그리고 삶의 진실을 내 마음과
몸에서 찾으려고 한다.
자다가 내 기침소리를 듣고
깨어나 좌정(坐定)을 하고
기침이 잦아질 때를 기다리면서
이 일 저 일 지나온 세월을 헤아린다.

둘레의 고마운 은혜 속에
살아오면서 내 자신은 과연
그런 은혜에 얼마만큼
보답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본다.
그리고 내게 허락된 시간의 잔고가
얼마쯤 남아있는지도 생각해 본다.
나는 기침으로 인한 한밤중의
이 ‘좌정’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즐기고 있다.

별처럼 초롱초롱한 맑은 정신으로
내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때로는 등잔을 켜 읽고 싶은 글을
뒤적거리기도 한다.
한낮의 정진보다 한밤중의
이 깨어 있음에서 나는 삶의
투명한 기쁨을 누리고 있다.

기침이 아니면 누가 이 밤중에
나를 깨워줄 것인가. 이래서
기침에게도 때로는 감사하고 싶다.
이와 같이 늙어감이란 둘레의
여건이나 사물을 거부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임이다.
언젠가는 이 다음 생의 시작인
그 죽음까지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자연계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있듯이 우리들의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다.
그러나 자연계와 다르다면
우리들 삶에는 개인의 의지적인
노력에 따라 그 사계가 순환적
이지만 않고 동시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육신의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무슨 일이건 그것이
삶의 충만이 될 수 있다면
새로 시작하는 그 때가 바로
그 인생의 씨 뿌리는 봄일 것이다.
내가 아는 올해 85세인
어떤 학자는 불교의 원형을 알고 싶어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고 있다.

또 어떤 분은 정년 퇴임 후
대학원에 들어가 평소 배우고
싶었던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
금년 90세인 한 할머니는
지금도 벼루에 먹을 갈아 붓으로
또박또박 경전을 베끼는
일로 자신을 닦아나가고 있다.
육신으로는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이 분들을 어떻게 파장의
인생이라고 밀어낼 수 있겠는가.

살 줄을 아는 사람은 늙어감에 따라
그의 인생도 잘 익어 향기로운
열매처럼 성숙하게 된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그 나이만큼 성숙해져야 한다고
주장해온 바이지만
내 자신은 과연 성숙의 길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 묻고 되돌아본다.

글/법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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