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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수미산정] 아니면 버려야하지 않은가?

연꽃 0 6,222 2008.10.18 00:00
아니면 버려야하지 않은가?

부처님의 성도과정을 읽을 때마다 필자를 부끄럽게 하지만 동시에 감동과 큰 용기를 주는 원칙이 ‘아니면 버려라’는 것이다. 부처님의 성도과정을 잘 담고 있는 <맛지마 니까야>(중부) <성구경>(M26)과 <긴 삿짜까경>(M36)을 살펴보면 세존께서는 크게 세 가지를 버리셨다.
 
세속은 슬픔의 원인
 
첫째는 세속적인 삶을 버리셨다. 이것이 바로 생노병사와 슬픔과 오염의 원인이라 판단하셨기 때문이다.(M26) 둘째는 출가한 뒤 터득한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라는 당대 최고가는 삼매의 경지를 버리셨다. 이 둘은 당대 삼매수행의 대가이던 알라라 깔라마와 웃따라 라마뿟따로부터 체득한 높은 삼매의 경지였지만 세존께서는 “이것은(속된 것들을) 역겨워하도록, 욕망이 빛바래도록, 소멸하도록, 고요에로, 최상의 지혜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단지 무소유처/비상비비상처에 다시 태어남에 이바지할 뿐이다”(M26)라고 결론을 내리셨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는 고행을 버리셨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당대 최고의 삼매의 경지가 “죽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M26)이 아니라고 판단하신 뒤 고행자 집단으로 들어가서 6년 동안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난행고행을 하셨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혹독한 고행을 통해서 신들로부터 아라한이라는 칭송을 듣기도 하였지만 이러한 고행도 버리고 떠나셨다. “이 극심한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능가하는 성자에게 어울리는 특별한 지와 견을 증득하지 못했다”(M36)고 결론을 내리셨기 때문이다.
 
그런 뒤에 “타락”이라는 동료 고행자들의 혹독한 비난을 감수하면서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 수자따가 공양한 죽을 드셨다. 그 후 무소유처나 비상비비상처로 대표되는 무색계 삼매라는 극단으로 치우치지도 않고, 숨을 쉬지 않는 선정(M36) 등의 고행을 통한 삼매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어릴 때 농경제에서 체험한 행복을 그 특징으로 하는 선정(=初禪)이 해탈열반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발견하셨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제2선과 제3선과 제4선으로 정의되는 새로운 선정을 체득하셨고, 이러한 네 가지 선정을 기초로 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실현하셨으며, <대인연경>(D15) 등은 깨달음의 내용을 연기와 무아로 정리하고 있다.
 
‘아니면 버리신’ 부처님의 단호한 태도에 입각해서 지금의 우리 승가를 되돌아보자. 필자를 포함한 한국 승가는 ‘아닌 데도 거머쥐고 있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이고 있는 듯하다.
 
버려야하는 세 가지
 
첫째, 쾌락, 명성, 권력, 돈 등이 궁극적 행복이 아니라며 버리고 떠난 것이 부처님의 출가이건만 우리 승가는 이런 세속적인 것을 버리지 못하고 거머쥐고 있는 집단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지 않은가? 둘째, 삼매 혹은 선정지상주의를 버리고 떠난 분이 우리의 세존이시건만 우리는 잘못된 선정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이를 최상승이라 거머쥐고 있지는 않은가? 셋째, 우리는 부처님이 고구정녕하게 가르치신 무아를 가슴열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갖가지 이상한 변명이나 궤변이나 말장난을 늘어놓으면서 상주불변하는 마음이나 진아를 찬탄하고 오히려 이것을 대승이라 거머쥐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버려야하지 않은가?
 
 
[불교신문 2384호/ 12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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