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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수미산정] 법을 의지하라(각묵)

연꽃 0 6,452 2008.10.18 00:00
각묵스님 / 법을 의지하라

불교는 신이니 절대자니 자아니 마음이니 하는 존재나 관념의 속박에 묶이는 것을 거부하고 해탈을 지향하는 종교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불교는 출격대장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따르는 가치체계로 여겨졌으며, 중국 사람들은 불교를 으뜸가는 가르침이라하여 종교(宗敎)라고 불렀다. 신이나 관념의 주박에 예속되기를 환영하는 속물들이 범접할 수 없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해탈하신 부처님께서도 의지처가 없이 머문다는 것은 괴로움이라고 고백하셨다.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성취하신 뒤 아직 아무에게도 자신의 깨달음을 드러내지 않으셨을 때에 과연 나는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를 두고 이렇게 진지하게 사유하셨다.

깨달음의 내용이며

“아무도 존중할 사람이 없고 의지할 사람이 없이 머문다는 것은 괴로움이다. 참으로 나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하는가?”(우루웰라 경, A4:21) 정등각을 성취한 자신이 의지할 존재가 어디에도 없음을 꿰뚫어보신 세존께서는 “참으로 나는 내가 바르게 깨달은 바로 이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리라”(A4:21)라고 결론지으셨다.

그리고 “법을 의지하여 머물리라”는 이러한 부처님의 태도는 부처님이 전법과 교화를 하신 45년 내내 “법을 의지처로 삼고(法歸依) 법을 섬으로 삼아라(法燈明)”(대반열반경, D16)는 가르침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세존께서 반열반하시기 직전에 남기신 첫 번째 유훈도 바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D16)이라는 것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난다 존자도 세존께서 반열반하신지 얼마 뒤에 고빠까 목갈라나 바라문에게 “비구들은 법을 의지처로 한다”(M109)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반열반하고 계시지 않는 지금에 사는 우리 불자들이 뼈가 시리고 가슴이 사무치게 의지하고 존중하면서 배우고 궁구하고 이해하고 실천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법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법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내용이기도 하며, 동시에 깨달음을 성취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래서 초기경에서부터 법은 참으로 다양하게 설해지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은 오온(五蘊)으로서의 법이며,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12처(處)요, 세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18계(界)라는 법이다. 윤회와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신 법은 12연기이며, 나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법칙으로서의 법은 조건(緣, 24연 혹은 6인-4연-5과)이다. 중생을 타락하게 하는 10불선업도는 해로운 법(不善法)이며, 향상하게 하는 10선업도는 유익한 법(善法)이다.

무엇보다도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로서의 법은 사성제이고, 깨달음을 성취하는 수단으로서의 법은 37가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菩提分法, 助道品)이며 그 핵심은 팔정도이다.

깨달음 성취의 수단

그러므로 인간은 법을 의지처로 삼고 팔정도를 실천하여, 신이나 절대자의 주박이나 자아나 일심이나 일체존재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나서 해탈열반을 실현하게 되고 그래서 성자나 출격대장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를 신의 노예요 종이라고 속박하면서도 그것을 대단한 것인 양 떠벌리는 분들이 이러한 불교를 왜곡하고 폄하한다니 참으로 유감스럽다.


[불교신문 2456호/ 9월3일자]
2008-08-30 오전 10:21:06 /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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