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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는 붓다를 모른다” (불교포커스, 정성운 기자)

연꽃 0 6,801 2008.10.18 00:00
“한국불교는 붓다를 모른다”

성열스님, <고따마 붓다> 통해 ‘신학화’ 질타


붓다는 누구인가? 불교도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인데, 이 질문은 여러 가지로 변용된다. 붓다는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지금 붓다가 계신다면 어떻게 하실까? 나에게 붓다는 누구인가? 답은 붓다의 삶과 가르침에 담겨 있다.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아직도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스리랑카의 불교학자 월폴라 라훌라는 <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에서 “만일 어떤 사람이 붓다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그 가르침을 올바른 길이라고 확신하고 이를 따르려고 한다면, 그 사람이 곧 불교도이다”고 말했다.

불교도가 되는 길은 아주 쉽다.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 가르침을 따른다는 일이 만만한 일인가. 가르침을 알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 가르침을 배반하기 일쑤다. 그러니 불교도로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붓다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으며, 이 지점에서 붓다의 전기(傳記)가 쓰여지고 읽혀진다. 이럴 때 붓다의 전기는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는’ 역동이며, 현실 불교의 타락을 질타하는 개혁의 몸짓이며, 붓다의 불교를 되살리기 위한 깃발로 휘날린다.

많은 붓다의 전기가 있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무샤고지 사네아츠의 <붓다>(현암사)가 있었다. 가깝게는 도법스님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아름다운인연), 김정빈의 글과 최병용의 그림으로 엮은 <부처님 생애>(솔바람)가 있다.

<신대중불교의 철학적 기초>를 통해 불교의 활발발한 교리체계를 ‘새불교 지향’의 관점으로 제시했던 성열스님(강남포교원 원장)이 이번에는 붓다의 전기를 펴냈다. <고따마 붓다: 역사와 신화>(문화문고).

‘역사와 신화’란 부제가 눈에 띄는데, 성열스님은 서문에서 “고따마 붓다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설화를 구분하여 보다 더 사실적인 모습을 들여다보자는 뜻에서였다”고 말한다. 이는 한국의 현실 불교에 대한 문제의식의 소산이다.

성열스님은 “이제까지 이 땅의 대부분의 불자들이 가지고 있는 불교신행은 역사적 존재로서 인간 고따마 붓다가 가르친 삶의 방식을 체험을 통해 자기화하기보다는 신격화되고 초인화된 붓다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지적한다.

성열스님은 이를 ‘불교의 신학화(神學化)’라고 표현하면서 “고따마 붓다에 대한 신학적 접근 방식은 불교에 대한 왜곡과 오해를 불러왔다. 불교의 신학화야말로 불교 타락의 극치라 하겠다”, “한국불교의 위기는 불교를 믿는다면서 교주(敎主)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비롯되고 있다”, “붓다의 신격화는 신심이란 이름으로 더욱더 심해졌고, 불교의 신학화는 기도라는 이름을 빌려 더욱더 심각해졌다. 붓다의 신격화는 빗나간 믿음을 낳게 되었고, 불교의 신학화는 지금 이 지상에서의 종교를 죽음 저 너머의 종교로 왜곡하고 말았다”고 질타하고 있다.

성열스님의 비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신학화된 불교에서는 승려는 고따마 붓다의 뒤를 잇는 수행자가 아니라 사제(司祭)로 전락하고 만다. 사실 오늘 이 땅의 많은 출가자들이 사제의 역할에 매달려 있을 뿐 붓다의 정신으로 살려는 몸짓은 적어 보인다. 바로 이것이 한국불교의 위기이다.” “출가자들의 정신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존경해 마지않는 고따마 붓다 역시 죽어버린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성열스님의 붓다는 누구인가? “우람한 불전에 안치된 불상도 아니요, 우상화되고 신격화된 붓다도 아니다. 자신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았던 인간 고따마 붓다이다.”

500쪽 넘는 적지 않은 분량의 <고따마 붓다>는 ‘붓다가 태어난 인도’ ‘탄생과 전설’ ‘젊은 시절’ ‘출가와 수행’ ‘항마와 성도’ ‘최초의 설법’ ‘전도의 발자취’ ‘붓다의 만년’ ‘최후의 유행(遊行)’ ‘붓다의 임종과 경전 결집’ ‘그 밖의 이야기들’로 짜여져 있다. 이 같은 구성은 이미 나와 있는 붓다의 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빨리어 경전과 기존 연구를 일일이 밝히고, 필요할 경우 해설을 덧붙이고 저자의 견해를 제시했는데, 각주(脚註)가 무려 1186개의 달한다. 이 점이 기존의 것과 확연히 다르다. 붓다를 대면하려는 저자 자신의 치열함과 정밀함의 결과이다. 현실의 불교에 가려진 붓다를 찾으려는 이들과 후학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일찍이 이런 수고는 없었다. “고따마 붓다의 일생을 본격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연구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는 평이 무색치 않다.


정성운 기자 woon1654@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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