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밥티의 소원

보리심 0 7,949 2006.08.25 00:00
밥티의 소원

 


깊어가는 밤

월명암의 초여름의 적막을 잠재우는 풀벌레와 철새들의 향기는 보름이지만 반달을 중천에 쉬게 하고 삼성각의 문이 열리고 또 닫힌다

향로에 향을 피워놓고 합장하며 물러서서 좌복을 높이 깔고 명상에 젖어들 때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두 사람인 듯하고, 속삭임이 들리며 점점 가까이 오는 소리다.

문이 스르르 열리며 그윽한 향기와 아울어 방안이 환하게 밝아오고 깨끗하게 늙으신 노스님께서 들어오시며, 뒤이어 20전후 되어 보이는 행자스님이 바랑을 벗으며 들어온다.

저녁때가 된 모양이었다.

바루에 공양이 담아졌고 평화롭게 공양을 마친 뒤 바루를 씻으려 할 때 노스님께서 행자에게 말을 건냈다.

“얘야, 네 옆에 한 중생이 슬프게 통곡하고 있구나.”

“예? 노스님 옆에는 저 혼자 있지 않습니까?”

“얘야 지금 이 순간에도 삼계사생육도 중생이 함께 있으며 네 옆에도 한 톨의 밥티 중생이 통곡하는데 그 소리를 아직도 못 듣느냐? 너는 언제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겠느냐? 귀를 통하여 듣는 소리나 눈을 통하여 보는 것은 모두가 환상이며, 무상이요, 거짓된 것이다. 마음과 마음으로 소리 없이 듣고 빛없이 보는 것이 진실 된 것이란다.”

“스님! 밥티의 울음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그래 들려주마!”

하시면서 합장하시고 몇 마디 주문을 외우시니 밥티가 점점 커져 18세쯤 되는 소년으로 변신했다.

손을 무릎 위에 얹고 고개를 숙인 미모의 소년의 두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이 양쪽 볼을 타고 흘러내리며 흐느끼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스님, 저는 인간이 되어보려고 수천, 수만 년 전부터 뼈를 깎고 살을 베어내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되기에는 천문학적인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어찌하면 무인도의 흙, 돌, 풀벌레가 되기도 하고 바다의 흙, 물고기 아니면 지추그이 변화를 따라 지구의 중심부에 광물질 또는 돌이 되어버리면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이 지나야 지표로 나올 수가 있으며, 사람들이 사는 도처의 광물질, 돌, 흙, 풀벌레가 되어 사람을 볼 수만 있어도 환희의 기쁨속에서 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답니다. 어쩌다 유실수가 되고 논과 밭의 작물이 된다하더라도 뿌리나 줄기, 이파리가 되며 열매의 껍질이 되고 말며 그래도 복이 조금 있으면 풀벌레나 동물의 먹이가 되기도 하지만 사람 근처에 살기도 어려웠답니다. 소인도 수십 수백만 유실수나 논과 밭의 작물이 되기도 하였으나 사람은 되지 못하고 물고기, 혹은 기고 뛰는 짐승이 되었답니다. 풀벌레 짐승이 될 때면 사람에게 뜯어 먹히고 잡혀 먹히고 싶은 심정, 흘러가는 물이 되고 지나가는 공기가 되어 사람에게 마셔달라고 애원하며 기도하는 그 심정…”

목 메이는 울음소리와 범벅이는 눈물로 말문이 막혔다.

“만물지영장, 자재로운 삶을 누리는 인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는 환희, 이 세상의 유정, 무정, 무색 중생들의 소원은 오직 인간만이라도 되어보고 싶은 심정이랍니다. 저는 3년 전 논의 흙이었으나 칠성님의 은총으로 벼의 뿌리를 지나 줄기를 거쳐 씨방에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그 때의 기쁨과 환희는 사람이 다 된 기쁨이요, 즐거움이었답니다.

밤이면 천신과 별들에게 기도하며 낮이면 내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도 날로 불안하고 초조하였답니다. 이는 내 옆에 있는 벼들이 병충해로 말라버리는가 하면 벼가 말라버리기도 하였으며 낮에는 새들과 밤에는 쥐들이 벼의 낱알을 까먹어 버릴 때면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한번은 하늘이 무너지는 공포를 느낄 때가 있었으니 새들이 우리들을 마구 까먹어 버릴 때였습니다. 우리 법우들은 무척 놀랐고 많은 법우들은 새가 되어 가버렸답니다. 벼를 벨 때도, 탈곡을 할 때에도, 자루에 담겨서 어디론가 실려가 창고에 들어가 있으니 옆에서 누가 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쥐였습니다. 백만장자의 거만한 모습으로 법우들을 까먹으니 쥐에게 까 먹히는 법우들의 울음소리로 창고 안을 가득 찼습니다.

우리들은 매시간 마다 기도를 하면서 잠시라도 겨를이 생기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어떤 친구는 물에서 왔고, 공기에서 왔으며, 풀에서 온 이, 동물에서 온 이도 있었답니다. 우리는 서로 자기들이 공부하는 방법을 이야기로 주고받기로 하였습니다.

공부의 방법론은 대개 이러했답니다. 사람이 되어 좋은 일 해보겠다는 것을 첫째의 원으로 삼고, 천신들에게 기도하면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을 둘째의 원으로 삼았으며, 이웃을 해치지 않으며 상부상조하는 것도 공부했습니다.

부처님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부처님을 알고 있지만 인간의 몸을 받지 않고는 부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없으니 실천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으므로 인간의 몸을 받고자 하며, 인간의 몸을 받는다 하더라도 남자 몸 받기를 원하며, 남자의 몸을 받더라도 불법문중에서 공부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저는 2년 동안 창고에 있다가 정미소를 갔는데 제 친구들은 울음바다를 이뤘습니다. 그 숱한 세월을 기다리고 바라던 꿈이었건만 기계는 무심했습니다. 약한 법우들은 기계에 들어가서 깨져버리고 껍질들은 모두 벗겨져서 밖으로 나가며 기계에 묻혀 버리고 땅에 떨어져 버리니 이 곳에서도 많은 법우들을 잃어버리고, 오늘 아침 솥으로 들어갈 때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 이 몸이 사람으로 태어날 수만 있다면 백도가 아니라 천도, 만도의 뜨거움도 달게 감당하겠습니다. 부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요. - 하고 천지신명께 빌고 또 빌었답니다.

일부의 법우들은 누룽지가 되고 주걱과 솥 사이에서 으스러지고 땅에 떨어지는가 하면 구정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인간되기도 어려운데 수도하시는 스님의 발우에 담겨졌기에 기쁨이 몇 백 배 더했으나, 그만 불행히도 밥숟가락에서 땅으로 떨어졌으니 그 슬프고 원통함을 어찌 말씀드리오리까.

부처님께서 게으른 자가 곧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셨는데 다 된 밥에 코 빠지는 격으로 이제는 수행자가 되었노라는 안도의 환희심에 즐거운 마음으로 만세를 부르는 순간 이렇게 땅에 떨어진 것입니다.

이제 제 신세는 무엇이 되겠습니까?

방바닥에 말라서 흙먼지가 되겠습니까, 아니면 구정물통에 들어가 개 ? 돼지나, 하수도 구멍에 들어가서 지렁이 밥이 되고 썩고 썩어 무엇이 될 것이며 언제 인간의 몸을 받을 기회가 오겠습니까.

죽을 수만 있다면 천만 번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는 것이 법이며 진리요, 인과입니다. 죽으면 끝나는 줄 알지만 형태만 변하고 또 변하여 4고 8난을 겪다가 어찌하여 인간의 몸을 받아 좋은 일을 하면 천상에 태어나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며, 혹 수행자를 만나 도를 닦으면 억 만겁 동안 변함없는 영원한 행복의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이 끝나자 소년은 형색이 남루하여진 채 눈물로 흐느끼며 ‘내 언제 다시 인간이 되어볼꺼나, 하면서 쭈그러들어 밥티로 변하였다.





이제까지 밥티의 말을 듣고 있던 행자스님은 그 밥티를 빨리 주워 먹으면서 ‘밥이 똥만 되는 게 아니라 살이 되고 사람도 되는구나’하면서 눈물로 천만년을 애원하고 기도하여 사람이 되겠다는 그 발원을 생각하게 되었다.

“얘야 밥만 사람이 되는게 아니라 저 흐르는 물과 공기는 물론, 밥상의 모든 반찬도 사람이 되기 위해 염원하며 또한 사람이 되는 것이란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으며 음식을 아무렇게나 먹고 아무렇게나 버린다. 음식을 버리는 것은 죄 중에도 큰 죄에 들어가며 내세에는 식복이 없는 중생으로 태어나니 배고픈 귀신이 되기가 일수란다.

따라서 음식이란 항상 깨끗하게 먹고, 먹다 남은 음식은 짐승이나 나는 새 등에게 줄 것이며, 짐승이 못 먹을 음식물은 꽃나무 밑이나 곡식에게 주어야 하느니라.

얘야, 우리가 음식을 섭취하게 되면 그 음식은 인체의 여러 곳으로 나뉘어지게 되거나 세포가 되어 72시간이면 죽어서 몸 밖으로 나가는가 하면 빠르게는 2~3시간 이내에, 많으면 1~2년 동안에 몸을 빠져나가며 인체의 신경세포는 3년의 세월에 걸쳐 교체가 되면서 인식을 전하게 된단다. 저 흐르는 물이 일년 내내 흘러가면서도 그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체도 저 흐르는 강물과 같느니라.

강은 옛 강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요, 몸은 옛 몸이로되 옛 세포가 아니로다.

물은 소를 만나면 소가 되고, 뱀을 만나면 뱀이 되며 개 ? 돼지는 물론 소나무, 감나무, 가시나무, 모란꽃, 봉선화꽃, 약초, 독초 등을 만나면 모두 그것들에 감응하나 근본인 물의 성품은 흩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만물을 보면 모두 식별하되, 수양이 되지 않은 사람은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인연을 지어 지옥 ? 아귀 ? 축생의 과보를 받고, 수양을 한 사람은 욕심과 성질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천상과 극락의 즐거움을 받는단다. 그러나 인간 자신의 성품은 천상 ? 지옥에 드나들더라도 흩어지지 아니하며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지었던 행위의 과보를 자신뿐만 아니라 세포들까지도 받는단다.

밥티가 그렇게 염원하여 인간이 되었건만 인간이 성질내고 어리석으며 욕심내는 죄를 지으면 그 세포도 죄를 지은 업보를 받게 되느니라.

음식은 먹는 것보다 소화를 시키는 일이 더 큰 일이다.

따라서 한 생각이라도 나쁜 마음을 내면 수십억의 세포들이 독심을 품거나, 의심 혹은 사심을 품고 육체를 떠나 나쁜 귀신, 독이 있는 풀, 사나운 짐승이 되고 지옥에 들어가 수많은 세월동안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러니 사람이 한 생각을 잘못하면 죄 없는 그 많은 세포들의 운명을 어찌할 것인가.

근래에 2만여 종교가 제 아무리 공덕이 많다고 한들 부모게 효도하는 공덕보다는 못하며 이 세상의 성인을 아무리 공경한 들 내 자신의 양심을 지키는 것만 못하느니라. 먼저 자신의 마음을 닦으면서 부모에 효도하는 자는 천지신명은 물론 우주 삼라만상이 그를 향해 공경하리라.

근자의 젊은이들은 경제와 정치에 눈이 어두워 인격도 모르고 부모도 모르니, 민족과 선배를 어찌 알 것인가.

남의 종교, 남의 말은 모두 소귀에 경 읽기가 되고 명예와 금전은 죽은 부모 살아난 것보다 더 좋아하는 구나.

사람의 일생은 잠깐인데 허송세월하고 늙어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한 톨의 밥티가 두 다리 뻗고 통곡하는 소리를 들었느냐?

인간으로 태어나기가 그토록 어려우니라. 인간으로 태어나더라도 사람의 노릇 또한 그렇게 어려우니 조심하고 조심하라.

촌음을 아껴 쓰며, 한 순간이라도 욕심과 성질, 어리석음을 버리고 적게 먹고 적게 자며, 아무리 고달프더라도 남에게 이익 되는 일을 행할 것이요,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남에게 해로운 일은 하지 말며 수도와 효행으로써 바르게 살아가라.”

상제께서는 항상 밥알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면 그것을 주으셨으며「장차 밥을 찾는 소리가 구천에 사무칠 때가 오리니 어찌 경홀하게 여기리요. 한낱 곡식이라도 하늘이 아나니라」하셨도다.

[이 게시물은 삼운사님에 의해 2019-06-25 12:54:26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삼운사님에 의해 2019-06-25 12:59:01 [복사본] 자유게시판에서 이동 됨]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