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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도스님 기고문 : 도민일보 '두레박'

삼운사 0 7,660 2006.08.11 00:00
[두레박] 시절 인연(時節 因緣)
 
월도(춘천불교사암연합회장. 삼운사 주지)
 
  요즘 더위가 참으로 대단합니다. 햇볕이 몹시 뜨겁게 내리쬐는 더위를 '불볕더위'라 합니다만, 그런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입니다. 그런데, 다 같은 더위라도 그 반응은 사람마다 꽤나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덥다, 더워~'를 연발하며 무조건 피하려고만 하고, 더위 때문에 느껴지는 괴로움을 고스란히 표출하여 주위사람들의 불쾌지수까지 높여주는 사람도 있는데, 그에게 있어 더위는 참으로 성가신 존재이고 괴로움 자체이기 때문에 이 삼복더위는 하루빨리 지나가 버려야 할 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더위를 피하려 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삼복이니 당연히 덥지…' 하고 마음을 열어 더위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때가 되어 더운 것을, 탓하면 무엇하랴. 이 땡볕이야 말로 여름이 여름다운 것이며, 여름이 여름다워야 가을도 가을답지. 그래야 알곡도 잘 영글고 사과도 달겠거니…'여기어, 더위를 피해 도망다니며 짜증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더위를 즐깁니다. 지치기 쉬운 건강을 챙겨가며 여름의 자연을 만끽하고 사계절의 진면목을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름은 다 같은 여름이로되 누구에게는 괴로움이요 누구에게는 즐거움이 되기도 합니다. 여름이 괴로우냐 즐거우냐는 결코 수은주의 높낮이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에 달려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인연법(因緣法)을 설하시었으며, 더위 또한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다가서는 인연을 피하려 하지말고, 그 인연을 살펴 인연에 걸맞는 도리를 다하는 사람이야말로 지혜로운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더위가 몇년만에 최고라고 겁을 줘도, 더위를 시절인연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겐 오히려, 이번 여름을 특별하게 장식해주는 뉴스일 뿐이요, 불쾌지수가 높다고 겁을 줘도 '유쾌지수가 잠시 낮아진 모양이구나' 여길 뿐입니다. 그의 마음은 늘 평온하며, 그 어떤 폭염도 그의 안락을 방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절인연을 말해주고 싶은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바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입니다. 이번 주에 벌써 대입수능 100일기도가 시작되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늘상 공부에 짓눌려 지내는 고3수험생들에게 이 찌는듯한 더위는 또 하나의 버거운 짐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고초는 참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안쓰럽거니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은 또 오죽 하겠습니까… 법당을 찾는 어머님들의 얼굴에 그 아프고 간절한 심정이 절절히 배어나옵니다.

 우리 부모님들께서 좀 더 여유있고 넓은 시야로 자녀들을 다독여 주셨으면 좋겠고, 우리 수험생들도, 물론 힘든 시기입니다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듯이 시절인연으로 받아들이고, 뿌린만큼 받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편히 하면서, 다만 올겨울 시험장을 나설 때 후회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 모든 어려움이 다 성장해가는 과정이며, 성인이 되기위한 진통이며, 인생을 더 강하고 윤택하게 해줄 보약과 같은 시절이라 여긴다면, 그는 참으로 지혜로운 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시절인연으로 받아들이면, 내 행복을 방해하는 걸림돌로 보이던 것이, 더 큰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디딤돌로 보이며, 이것이 바로 이 세상 그대로를 극락으로 바꾸는 지혜입니다. 여러분 모두의 건강과 평온을 부처님전에 축원드립니다.
 
 
기사입력일 : 2006-08-1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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