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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수행담] 구인사 동안거를 다녀와서

장석효 0 7,018 2006.02.20 00:00
지난 겨울 구인사 동안거에 다녀왔다. 접수실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는 인광당이 처사 안거장소였는데, 넓은 기도실에 각자의 자리가 사각형으로 그려져 있고 고유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사각형의 길이는 겨우 키정도 되었고 너비는 앉으면 서로 무릎이 닿지않을 정도쯤 되는 협소한 공간이었다. 거기에 가지고 간 짐을 놓고 누우면 서로의 발이 꽤나 엇갈려야 했지만 불평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불평은 커녕, 250여명이 함께 생활하는 기도실이었지만 실장의 지휘(?)에 따라 그야말로 일사불란하게 생활해 나가는 모습이 신기하기조차 했다. 목탁소리에 맞춰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기도시간엔 열심히들 정진하고, 식사시간이면 밥먹으러 가고 잠잘 시간이 되면 코를 골며 자고.. 모두가 정말로 진지하게, 그리고 질서있게 생활하면서 불편할 듯 보이는 생활 속에서 안락을 찾아가고 있었다.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기도의 열기였다. 작년 봄에 사박오일 기도를 해봤었는데 그 때의 분위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오전이나 오후기도라고 해서 상대적으로 소홀하지도 않았고,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이어지는 여섯시간의 철야기도는 정말로 매일매일 혼신의 힘을 다 쏟아붓듯 기도실의 열기가 대단하였다. 방석도 없이 맨바닥에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합장의 자세로 기도를 하시던 처사님, 일단 앉으면 여섯시간 내내 바위처럼 요지부동이던 처사님, 관.세.음.보.살.. 한마디 한마디에 마치 초혼의 무게가 실린듯 하시던 처사님.. 해제식이 있던 밤조차 흐트러짐없이 새벽 4시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가시던 처사님들.. 초보인 나에겐 그저 신기하고 존경스러웠다.

안거 기간중에 눈이 여러번 왔었는데 그 때마다 모두들 빗자루를 들고 눈을 치우는 모습도 가히 장관이었으며, '조사님 오신날' 행사를 마치고 등을 뗄 때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손에 손을 보태어 등을 날라 보관실로 옮기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대여섯살 밖에 안돼 보이는 꼬맹이들이 한 두개씩 등을 메고 엄마를 따라 계단을 오르던 모습, 보살님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손에 손을 이어 등을 나르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날 관음전 뒷켠에서 마신 율무차는 참으로 따스하고 달콤했다.

그리고, 정말 놀란 것은 조사님 오신날 행사에 참여하려고 전국에서 모여든 신도님들의 물결, 그리고 그 열기였다. 그날 들어온 관광버스만 해도 120여대가 넘었다고들 했고 이미 구인사에 안거 등 기도차 들어와 있던 신도가 1500여명, 게다가 하루종일 꾸역꾸역 걸어 들어오는 신도님들.. 결국 기도실들은 차고 넘쳐 접수실과 사무실에도 꽉꽉 차고, 심지어 각 건물 계단에까지 자리경쟁이 붙을 정도였다. 그 추운 날씨에 아랑곳도 하지 않고 계단 모퉁이에 자리를 펴고 앉아 밤새 관음정진을 하던 보살님들의 모습은 너무나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이렇게 구인사 골짜기에 일렁이는 신심의 열기로 겨울추위가 희석되었음은 물론, 번뇌망상은 삭아들고 고통은 녹아내려 연꽃의 향내가 은연중에 배어왔다. 조사님 오신날 행사가 적멸궁에서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 보았다. 한자락 차일을 펼쳐 내린 양 - 일단의 구름이 길게 드리우며 서서히 흐르고 있었다.

나무 상주시방불. 나무 상주상월원각대조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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