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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운사벽화 - 원효스님과 호로병

장석효 0 8,336 2006.01.16 00:00
이 벽화에서 붓을 들고 계신 분이 원효스님이신데, 스님은 사미 대선을 불러 마을로 내려가 호로병 다섯개를 구해오라고 하였다. 『갑자기 호로병은 뭐 하시려구요?』 『쓸 데가 있느니라. 사시마지 올리기 전에 어서 다녀오너라.』대선이 마을로 내려가자 원효 스님은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큰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선정에 들었다. '어떻게 할까?..' 지그시 눈을 내려감은 원효 스님은 수차의 자문자답 끝에 자기 희생쪽을 택했다. 스님은 왜구들이 말을 듣지 않을 경우 5만 왜구를 살생키로 각오했다. 5만명 살생이라는 큰 업보를 스스로 짊어지더라도, 무고하게 짓밟힐 신라의 백성들을 구해야 했다.

때는 신라 신문왕 원년(681). 지금으로부터 약 1천3백년 전 - 대마도를 거점으로 일본 해적들은 해마다 신라의 함대와 동해안 지방을 침입하여 약탈과 방화, 살인을 자행했다. 그럴 때마다 태평세월을 보내던 신라인들은 막심한 피해를 입곤 했다. 이를 막기 위해 신라 조정에서는 배를 만들고 군사를 길렀다. 그러자 왜구는 몇 년간 뜸했다. 왜구의 침입이 뜸해지자 신라는 다시 안일해졌다. 이 틈을 노려 왜구의 대병선단이 물밀듯 밀어닥친 것이었다. 5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 왜구는 서라벌을 향해 진격할 준비를 하였다. 이들은 동래와 울산 앞바다에 배를 대고 첩자를 풀어 놓았다. 원효 스님은 이러한 왜구의 계략을 이미 다 헤아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5만의 목숨을 살릴 방도는 없는 것일까?..' 원효 스님은 신라 장군기를 바위에 세워 놓고 암자로 돌아왔다. 그의 눈은 빛나고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대선아, 너 저 아랫마을 어귀에 가면 길손 두 사람이 있을 테니 가보아라.』『가서 어떻게 할까요, 스님?』 『그냥 가보면 알게 될 것이니라.』마을 어귀에 당도한 대선 사미는 뱃사람들을 발견했다. 등을 보이고 있는 그들이 스님께서 말한 길손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니 그들은 왜말을 하고 있었다. 『장군기가 펄럭이는 걸 보니 필시 신라 대군이 있을 걸세. 그냥 돌아가세.』『이봐, 저 성벽 안에 신라 군사가 있다면 저렇게 조용할 수가 있겠나? 길에 군사가 지나간 흔적도 없고, 마을 사람들 얼굴도 평온하기만하니 성벽 안에 군사는 있을 리 없네. 저 장군기는 무슨 곡절이 있을테니 올라가 알아보세.』

둘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미승은 그 뒤를 따랐다. 산 중턱쯤에 이르러 그들은 길을 잃었다. 주위를 살피던 그들은 저만치 서 있는 사미승을 보고 손짓해 불렀다. 『우리는 뱃사람인데 길을 잃었구나. 저기 장군기가 있는 곳을 가려는데 안내 좀 해주겠느냐?』『그러구 말구요. 저 절은 제가 사는 미륵암이에요. 함께 가시죠.』『고맙다. 그런데 저 깃발은 무슨 깃발이냐? 저 근처에 군사들이 있니?』『아뇨.』이것저것 물어보던 둘은 별다른 정보가 없을 듯하자 그냥 내려가려 하였다. 그 때, 장군기가 세워진 바위 위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시오. 두 분 길손은 잠깐 들렀다 가시오.』『저, 스님. 저희들은 바빠서 그냥 돌아가렵니다. 다음에 찾아뵙지요.』『어허, 모처럼 오셨는데 그냥 가시다뇨. 대선아, 어서 모셔오너라.』

어쩔 수 없이 암자에 들어선 두 사람.. 그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스님이 입을 열었다. 『어디서 오셨소?』『기장에서 왔습니다.』『기장? 그럼 왜군을 만났겠군.』『왜군이라뇨? 못 봤는데요.』『못 봤다구? 네가 네 자신을 못 봤다고 하다니, 너희가 왜인이 아니고 무엇이냐?』스님이 호통을 치자 한 녀석이 재빨리 품에서 비수를 꺼내 스님을 향해 찔렀다. 순간, 『네 이놈!』대갈일성과 함께 스님의 주장자가 허공을 갈랐다. 칼을 빼든 왜군은 그 자리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이를 본 한 녀석은 목숨을 빌었다. 이윽고 다른 녀석이 정신을 차리자 스님은 그들 앞에 호로병 다섯 개를 나란히 놓았다. 『너희가 내 말을 들으면 무사할 것이나 만약 어기면 너희들은 물론 5만 대군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니라.』스님은 붓을 들어 호로병 목에 동그랗게 금을 그었다. 그러자 두 녀석의 목이 아프면서 조여들었다. 그리고 목에는 호로병과 같은 핏멍울진 붉은 동그라미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두 녀석은 공포에 떨면서 엎드려 목숨을 빌었다. 스님은 다섯 개의 호로병에 동그라미를 그어 그중 세 개를 그들에게 주었다. 『자, 이것을 가지고 너희 대장에게 가서 일러라. 만약 이 밤이 지나도록 돌아가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두 녀석은 즉시 대장에게 가서 호로병을 내보이면서 보고했다. 『뭣이? 이 따위 호로병으로 나를 놀리는 거냐!』 화가 치밀어 오른 대장은 칼을 들어 호로병을 내리쳤는데... 병이 깨지는 순간 대장의 목이 꺾이고 피를 토하며 숨지고 말았다. 이를 보고 놀란 왜군들은 혼비백산하여 모두 도망을 쳤다고 전한다. 지금도 동래 범어사가 있는 금정산 중턱에 가면 원효대 바위가 있고, 그 바위에는 당시 장군기를 세웠던 자리가 움푹 파인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벽화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우리 불교는 호국불교이다. 나라가 외침에 의해 위기에 처하고 무고한 백성들이 고통으로 시달릴 때마다 언제나 우리 불교는 선봉에 나서서 난국을 타개해 왔다. 삼국시대엔 황룡사 구층탑으로, 고려시대엔 팔만대장경으로써 온 나라를 일치단결케 하여 국난을 극복하였고, 임진왜란 때엔 서산대사와 사명당이 직접 승병을 일으켜 이 민족을 구해내었다. 이와같이 우리 민족 유구한 역사의 도처에 호국불교의 발자취는 뚜렷히 빛나고 있거니와, 우리 불자들은 이에 대한 자부심과 더불어 사명감을 잃지말아야 하겠다.


[사진자료: http://user.chol.com/~polk/dica/sam004.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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