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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운사벽화 이야기(2) -- 안수정등

장석효 0 8,479 2005.07.23 00:00
안수(岸樹) 즉, '강기슭의 나무'란 본래 대반열반경에 이르기를,
'이 몸은 마치 험준한 강기슭에 위태롭게 서 있는 큰 나무와 같아서 무너지기 쉽다.
폭풍을 만나면 반드시 쓰러지기 때문이다'라고 설한 말씀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정등(井藤)은 '우물속의 등나무'라는 말이다.

한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가는데, 무서운 코끼리가 그를 쫓아오고 있었다.
코끼리를 피하여 정신없이 달아나다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고,
등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그 사람은 등나무 넝쿨을 하나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우물 밑바닥에는 독사 네마리가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고,
또 우물 중턱의 사방을 둘러보니 작은뱀들이 혀를 낼름거리고 있다.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아 우물 중간에 매달려 있자니,
두 팔은 아파서 빠지려고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흰쥐와 검은쥐 두마리가 번갈아 가며
그 등넝쿨을 쏠아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만일 쥐가 쏠아서 등나무 넝쿨이 끊어지거나,
두팔의 힘이 빠져서 아래로 떨어질 때는 독사들에게 잡아먹히는 수밖에 없는 신세다.
그 때 머리를 들어서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 이렇게 떨어져서 입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렇게 꿀을 받아먹는 동안엔 자기의 위태로운 처지도 모두 잊어버리고 황홀경에 도취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코끼리는 무상하게 흘러가는 세월을 의미하고, 등나무 넝쿨은 생명을,
검은쥐와 흰쥐는 밤과 낮을 의미한다. 작은 뱀들은 가끔씩 몸이 아픈 것이고, 독사는 죽음을 의미한다.
달콤한 꿀물방울은 인간의 오욕락(五慾樂) - 재물, 이성, 음식, 명예, 편안함에의 욕망이다.
급박한 상황에 놓여있으면서도 중생들은 그 꿀 한 방울에 애착하여 무상하고 위태로운 것을 모르고 있다.
이렇게, 생사고해에서 헤매는 중생을 비유한 설화가 바로 '안수정등' 이야기이다.

다시 올라갈 수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려갈 수도 없는 신세..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 방울을 먹던 이 사람이 어떻게 하면 살아나겠는가?

1949년 12월,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답게 살자'는 결사를 하고 용맹정진을 하던 스님들
청담, 자운, 성철, 월산, 혜암, 향곡, 성수, 법전스님들에게 이 '안수정등' 문제가 제기됐었는데,
그 때, 어떤 스님은 무릎을 탁 치며 '아! 달다'하고 일어서 문밖으로 나갔다 하고
어떤 스님은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 했다 하고
또 어떤 스님은 '개구즉착(開口卽錯)'이라고 했다 한다.

이 물음에 성철 스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뒤에 성철 스님에게
그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 무슨 의미였는가 질문하자 스님은,
'조주와 같이 할(喝)을 하랴, 덕산과 같이 방(棒)을 하랴. 니 원하는 대로 해 주마'라고 하셨다.

자, 마땅히 명심해야한다.
이 안수정등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처지라는 것을.
 

> 이 '삼운사벽화이야기'는 [KBS코리아넷] 칼럼에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
> 칼럼을 보시려면: http://chuncheon.kbs.co.kr/reporter/col8/index.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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