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없는 지식은 허망한 분별에 지나지 않는다.
안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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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6 00:00
자각 없는 지식은
허망한 분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은 분류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분석하고 쪼개고 가르는 작용을 한다.
마음은 마치 프리즘과 같다.
분석하고 쪼개는 마음에서 프리즘의 현상이 일어난다.
하얀 순백(純白)의 햇살이
프리즘 속으로 들어가면 일곱 가지 색깔로 분해 된다.
무지개가 생긴다.
이 세상은 무지개와 같다.
마음속으로, 마음의 프리즘 속으로 한 줄기 햇살이,
순수한 진리가 들어가면 무지개의 일곱 색깔로 분해 된다.
마음은 진리를 일곱 색깔로 분해하기 때문에 전체를 볼 수 없다.
유물론(唯物論)적인 사고에 빠지면
유신론(有神論)적인 사고가 일어나고,
긍정에 빠지면 회의(懷疑)가 일어난다.
마음은 이렇게 이중성(二重性)이다.
마음은 언제나 유사개념과 반대개념을 생각한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순간 거기에 증오가 있다.
자비를 이야기하는 순간 거기 분노가 있다.
이렇듯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는
한 범주에 속해 있음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은 끝없이 분리하려 하고 있다.
<아름답다>고 말하게 되면
<추하다>라는 말도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추한 것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아름다운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신성(神聖)한 것을 이야기 할 때는
동시에 신성을 모독하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신(神)을 이야기 할 때는 악마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신을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인간을 이야기 하면 물질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고,
물질을 이야기하면 정신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으로 명심하라.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는 한 범주에 속해 있음을 거듭 명심하라.
마음은 모든 것을 분리하고 분석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은 하나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마음을 접어서 옆으로 젖혀놓지 않으면 안 된다.
프리즘을 통해서 보지 말라.
프리즘을 내 던져 버리고 순백의 빛을 보라.
분리되기 이전,
하나인 상태로서의 본질이 그대를 관통하게 하라.
자각 없는 지식은 허망한 분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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