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운사는 어디에서 왔는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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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4 00:00
어느덧 계절은 가을이 깊어가는 시월이다.
이제 머지않아 삼운사 창립기념일이 돌아온다.
처음 삼운사에 온 사람들은 도량이 참 크다고 놀란다.
그러나 진정으로 큰 것은 도량이 아니라, 그 신심이다.
지금부터 40여년 전, 전세방에서부터 시작한 삼운사가
이렇게 장엄한 위용을 갖추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모두가 불가능하다 생각하던 대작불사를 이루어낸 것은
수많은 신도님들의 깊은 신심과 인내와 화합의 힘이다.
쌓아올린 벽돌 한 장 한 장마다 신심의 결정체인 것이다.
나는 절 마당으로 들어서서 합장을 하며 법당을 우러른다.
‘거룩하신 부처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삼운사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그저 편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을 염려하는 배려이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다. 계단으로 올라간다.
그 곳으로 가면 관세음 보살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타락가산에서 선재동자에게 법을 설하시는 보살님
풍랑에서 중생을 지키려고 꽃잎을 타고 현신하신 보살님
짐짓 물고기를 파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나투시는 보살님
한 손을 뺨에 대고 연꽃을 바라보며 깊은 사유 잠기시고
한 손엔 버들가지, 한 손엔 정병 들어 감로수를 뿌리시고
둥근달의 광명처럼 중생마다 비추시는 자비하신 보살님..
그렇게 보살님의 향기 속에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
두 눈을 부릅뜬 귀면과 함께 화려한 꽃살문에 이른다.
두 개의 뿔과 날카로운 송곳니, 부리부리한 눈동자
귀면은 삿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불철주야 지킨다.
화려한 꽃살문은 부처님께 올리는 신심의 꽃공양이며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찬탄하는 천상계의 꽃비이다.
꽃살문을 지나 법당에 들어서면 여기는 불보살의 세계다.
'삼운사' 하면 누구든지 먼저 이 넓은 법당을 떠올린다.
그러나 넓은 것은 법당이 아니라 바로 부처님의 마음이다.
오직 진리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으셨던 부처님
중생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바다같이 품으시어
천민이건 악인이건, 심지어 당신을 해치려던 이들까지
가 없는 연민으로 구하시고 행복으로 이끄셨던 부처님..
수많은 중생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한숨을 달래시며
열반에 드는 그 순간까지도 우리 중생을 염려하신 부처님.
허공을 휘어잡고 바다를 들이키는, 날고 기는 재주라도
부처님의 크신 공덕, 넓은 사랑.. 어찌 말로 다 하리요!
법당을 나와 계단으로 들어서면 다시 관세음보살님을 뵈온다.
몇 년 동안 이 벽화 앞을 지나치면서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세상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가 보다.
아미타 부처님을 머리에 모시고 자애롭게 합장하신 보살님
마치 잘 가라고 배웅하듯 은은한 미소로 지그시 바라보신다.
삼운사를 둘러보면 여기저기 벽화들이 참으로 많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도 감탄했다는 '안수정등'의 비유
서산대사와 사명당이 도력을 겨루고 있는 만화 같은 그림
간절한 서원으로 죽어서까지 불사를 이뤄낸 가슴 찡한 전설
목에 걸린 비녀를 빼준 스님에게 은혜를 갚은 호랑이 이야기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에서부터 열반까지 감동의 장면들과
원효대사 의상대사 도림선사 자장율사 등 고승의 얘기까지
그야말로 건물 자체가 멋진 그림책이요 경전이며 법문이다.
‘그대 삼운사여, 참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와서 편안하게 마음공부 할 수 있게
이렇게 장엄한 위용으로 편리한 도량을 열어주고 있으니
나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크나큰 가피가 아니겠는가?
‘삼운사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의 덕행으로는 만나기 부끄럽네
한 장의 벽돌에도 깊은 신심 스며있고
한 점의 벽화에도 높은 법문 담겼으니
욕심과 허물 다 버리고
인생길 밝혀주는 등불로 알아
행복을 찾아서 삼운사로 갑니다’
<월간삼운 10월호 '이 달의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