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떤 비구(比丘)가 코살라국의 숲속에서 수행하던 중에 눈병이 생겼다.
의원을 찾아간 비구는 연꽃의 향기를 맡으면 눈이 다시 밝아질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요즘 말로하면 향기요법(aroma therapy)을 처방받은 비구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연꽃이 아름답게 핀 연못을 찾아갔다.
비구는 연못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 단정히 앉아 바람결에 실려 오는 연꽃향기를 맡고 있었다.
그 때 어떤 천신이 비구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가 비구에게 다가왔다.
그는 연못에 핀 꽃들은 아름답고 향기롭지만 모두 주인이 있는 것인데
어찌하여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꽃향기를 훔치고 있냐고 호통을 쳤다.
얼떨결에 도둑으로 내몰린 비구는, 연꽃은 연못 속에서 저절로 자라난 것이며,
자신은 꽃은 물론이며 잎이나 줄기조차 상하게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자신은 연꽃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서 바람결에 묻어오는 향기를 맡았을 뿐인데
어째서 그것이 도둑질이 되는지 수긍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
하지만 천신의 궤변은 멈추지 않았다.
연못에 향기로운 꽃이 피어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그것에는 주인이 있으으로
허락 없이 향기를 맡는 것은 마치 주지 않는 것을 갖는 것과 같기 때문에 도적이 분명하다고 했다.
바로 그 때 어떤 사람이 지게를 지고 오더니 연못 속으로 들어가 어지럽게 연꽃을 짓밟고 다니면서
탐스럽게 핀 꽃들을 뿌리째 뽑더니 지게에 짊어지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하지만 천신은 그 사람을 제지하거나 꾸짖지 않았다.
이를 지켜본 비구는, 향기만 맡는 것이 도둑질이라면 연꽃을 뿌리째 뽑아가는 것은 진짜 도둑질이 분명한데
왜 저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는 꾸짖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그러자 천신은,
연꽃을 뿌리째 뽑아간 그 사람은 항상 나쁜 짓만 일삼는 사람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꾸짖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것은 마치, 젖먹이의 어미가 검은 옷을 입고 있으면
아기의 침과 코가 묻어도 더럽다고 욕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다시 말해 나쁜 사람은 악행을 저질러도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아서
티가 잘 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비구는 마치 희고 깨끗한 옷과 같아서 쉽게 더러워질 뿐만 아니라
곱고 하얀 옷에는 파리만 앉아도 금방 눈에 띤다고 했다.
어질고 슬기로운 사람은, 작은 허물만 지어도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은 물론
설사 그 악행이 털끝만한 것일지라도, 세인들은 마치 큰 산과 같이 느낀다.
<잡아함 50권 '화경(花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