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탁교수 “건강한 죽음이 진짜 행복”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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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20 00:00
“밝고 건강하게 죽으려면 밝고 건강하게 살아야 합니다.”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2002년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0만명당 28.94명으로 세계 최고다. 자살만이 아니다. 홧김에 불을 지르고, 푼돈 뺐자고 어린이를 유괴한다. 매일 아침 신문에는 빠짐없이 죽음에 대한 기사가 실려있다.
지난 28일 오전 10시 서울 YWCA 대강당에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김옥남)와 한림대 한림과학원(원장 유재천) 공동주최로 국제세미나 ‘죽음준비교육-왜 실시해야 하는가’가 열렸다. ‘죽음, 성장의 마지막 단계’라는 마지막 발제를 맡은 오진탁 교수(43)를 만났다. 장자와 불교철학을 전공한 오교수는 한림대에서 ‘생사학(生死學)’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삶과 죽음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살과 살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죽는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자살했다고 생각해보세요. 달라질 거 없습니다. 자신만 소멸되는 겁니다. 자살할 명분이 있다면 살면서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게 백번 낫지요.”
오교수는 삶과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얘기를 꺼냈다. “삶 뒤에는 죽음이 있고 죽음 뒤에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 삶과 죽음, 죽음 이후는 인과(因果)관계로 이어져 있다. 죽음은 삶의 다른 모습이고 죽음 이후 또한 삶과 죽음에 따라 만들어진다. 추한 삶은 죽음이 추하고, 추한 죽음은 죽음 이후도 추하다. 그러므로 살아있을 때 아름답게 살 필요가 있다.”
그는 ‘삶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생명 경시 풍조를 낳았다고 말한다. “삶은 몸이고 현실입니다. 죽음은 마음, 곧 영혼이고요. 그런데 ‘얼짱·몸짱 열풍’ 보세요. 몸에 대해 관심은 큰데 마음은 돌아보지 않습니다. 마음이 피폐해집니다. 결국 몸도 피폐해지는 거지요.” ‘삶과 죽음, 몸과 영혼 사이의 불균형’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가족 해체를 예로 들었다. ‘가족이 사랑으로 하나된 게 아니라 경제로 연결돼있다. 그래서 부자아빠만 아빠고, 100점짜리 아이만 아이가 된다. 결국 작은 경제적 위기조차 가족이 견뎌낼 수 없게 됐다.’
“친구사이도 마찬가집니다. 사회가 무한 경쟁을 부추기니 친구는 경쟁자일 뿐이지요. 낙오자는 떼밀려나고 결국 삶을 포기하게 됩니다.”
오교수는 생명 경시의 또 다른 원인으로 낙태를 꼽았다. 그는 해마다 200만명의 생명이 낙태로 ‘원혼’이 된다고 설명했다. “생명은 남녀의 육체와 영혼이 결합되면서 비롯됩니다. 출산은 한 생명의 삶의 시작입니다. 낙태는 삶의 시작부터 부정해버리는 거지요. 당연히 그런 사회엔 건강한 삶이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오교수는 지금이 바로 죽음을 돌아봐야 할 때라고 한다. 죽음을 돌아볼 때 자신의 삶이 제한된 것임을 깨닫게 되고, 밝고 아름답게 살려고 애쓰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곧 삶을 돌아보는 일”이라며 가끔 가족이 모여앉아 서로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권한다. ‘가족에게 유서 쓰기’도 괜찮고, ‘나는 존엄하게 죽겠다’고 주변에 얘기를 해두는 것도 좋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죽음을 앞둬서야 죽음을 알립니다. 그러니 죽음이 삶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죽음교육은 청소년 때부터 해야 삶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게 됩니다.”
오교수는 실제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초등학생 때부터 죽음준비교육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결국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 둘다 똑바로 보라고 사람에겐 눈이 두 개 있는 겁니다.”
28일 세미나가 끝난 뒤 장기기증운동본부, 장묘개혁범국민협의회, 호스피스학회, 생명나눔실천회 등의 관련단체 회원과 대학 철학교수, 고교 윤리교사 등 3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밝은 죽음을 준비하는 포럼’ 창립모임이 열렸다. 한림대 한림과학원 정진홍 교수가 회장을, 오교수가 총무를 맡았다.
03/01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