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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삼운사 작성일[2018-01-09] 조회9회

불교를 상징하는 것들

본문

불교를 나타내는 상징에는 흔히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 연꽃, 법륜(), 일원상(), 원이삼점() 1) , 보리수, 5색기 등이다. 여기에서 는 원래 태양의 광명을 상징했으나, 불교에서는 일심()의 서기방광()2)에 비유했으며, 부처의 가슴과 손발과 머리에 나타난 길상()3) · 행운 · 경복()4)의 마크 등으로 사용했다.

불교의 진리 본문 이미지 1

연꽃은 진흙물에서 피어나면서도 물에 젖지 않고 꽃과 열매가 동시에 이뤄지는 특징이 있는데, 불교에서는 부처님께서 오탁악세()5)에 태어났으면서도 거기에 물들지 않고 3계의 중생을 교육한 데 비유하고 있다.

또한 옛날부터 인도의 왕들은 금륜() · 은륜() · 동륜() 등의 수레바퀴를 통해 세계를 정복했는데, 석존이 진리의 수레바퀴로 세계를 정복한다는 뜻이 법륜이란 말 속에는 담겨 있다.

일원상은 일심의 원융무애()6)와 시간의 영원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원이삼점은 불법승 삼보()7)를 표시하기도 하고 진속불이()8)의 중도를 나타내기도 한다.

보리수는 자각각타()9)와 각행원만(滿)10)의 깨달음을 상징하고 있으며, 5색기는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향을 표시하기도 하고, 청 · 황 · 적 · 백 · 흑의 5색 인종이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원래 이 기는 1882년 영국 군인 올코트 대위가 창안한 것인데, 1950년 세계불교도의회에서 만국 공동의 불교기로 채택하면서 청색은 귀의, 황색은 지혜, 적색은 자비, 백색은 청정(), 흑색은 정열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자고 결의했다.

그러면 이제부터 불교의 근본적인 교리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본래 석가모니는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해 그다지 중요성을 두지 않았다. 가령 우리의 몸과 영혼이 서로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우리가 죽은 후에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리고 이 세계가 유한한지 무한한지 등을 토론의 대상에서 아예 빼버렸다. 다만 고통의 바다인 인생으로부터 그 고통의 원인을 없애 불쌍한 인간을 구제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리고 인생을 구제하기 위한 근본 명제로서 삼법인()이라는 불교의 교리가 있다.

변함없는 진리, 법인

법인()이란 ‘변함없는 진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 가운데 첫째는 제행무상()이다. 모든 것은 시간 속에서 서로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소멸하며 또 그 일을 계속 이어가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늘 변화할 수밖에 없다. 즉 모든 것은 항상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무상()한 것이다.

그러나 무상하다는 것에 대해 다만 비관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깨달음으로 인해 우리가 사물의 나타나는 현상에 미혹되는 것을 미리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첫째 진리는 우리 인간이 밖으로 드러나는 고정적인 것만을 바라보고 거기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가르침이다.

한편, 이러한 주장은 《우파니샤드》에서 강조되었던 상주설()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보았듯이 《우파니샤드》는 대우주의 본체인 브라만과 개인의 본질인 아트만이 결국 하나임을 증명하는 관념론적 일원론으로서, 인간이 윤회에서 벗어나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상주()의 세계에 사는 것을 최고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불교의 진리에 의하면, 시간 앞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고 덧없이 흘러갈 뿐이다.11)

이렇게 보자면, 불교는 어떠한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일, 즉 무심히 흘려보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제법무아()라는 진리다. 불교에서는 원래 모든 것에 ‘나’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다고 말한다. 《우파니샤드》에서는 개인의 본질이라고 일컬어지는 아트만이 있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그런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그러할까?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뿐, 스스로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홀로 영원히 독립해서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이 세계 안에서 다른 사물들과 끝없이 접촉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며, 또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중이다. 내가 나로 될 수 있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 때문이다. 내가 선생인 것은 학생이 있기 때문이요, 내가 아들인 것은 아버지가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어리석은 인간이 자기 실체인 자아만 고집하기 때문에 모든 아집과 오류가 생겨나게 되고, 여기에서 스스로 고통을 지고 살아가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이다.

셋째, 일체개고()라는 진리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영원한 세계에 항상 머물며 오래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앞에서 보았듯, 모든 것이 무상해서 늘 변하고 원래 나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다 보니, 인생은 죄다 고통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고통이란 우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덧없는 것을 두고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하거나, 본래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데도 고집스럽게 나를 주장하기 때문에 좌절과 슬픔과 비탄이 따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행무상과 제법무아의 올바른 이치를 깨닫고 나면 고통은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우리 스스로 자신이 놓인 실제적인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다면, 이러한 깨달음의 지혜로부터 모든 고통은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말한 세 가지 진리 이외에 열반적정()12)을 추가하여 어떤 사람은 사법인()을 주장하기도 한다. 열반이란 ‘타오르는 욕망의 불길이 꺼진 상태’를 말한다. 우리 인간이 제행무상과 제법무아임을 알고 사물의 실제 모습이 텅 빈 공()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해탈하여 고요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적정이란 이글거리는 번뇌의 불꽃이 꺼짐으로써 얻어지는 고요한 경지를 말한다. 그러나 적정은 소극적인 고요함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시끄러움과 더러움도 그를 지배할 수 없다고 하는 적극적인 방호()13)의 뜻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네 가지의 신성한 진리, 사성체

불교의 진리 본문 이미지 2

불교에는 또한 네 가지의 신성한 진리, 즉 사성체()가 있다. 첫째는 모든 삶이 번뇌라고 하는 고체(), 둘째는 그 번뇌란 것이 우리 인간의 쓸데없는 욕망에서 싹튼다고 하는 집체(), 그러므로 욕망을 없애야 한다고 하는 멸체(), 그리고 그러한 해탈의 길은 여덟 가지 바른 길을 따라감으로써 비로소 얻어질 수 있다고 하는 도체()가 바로 그것이다.

첫째, 고체()에 대해 알아보자. 불교에서는 태어나는 것도 괴로움이요, 늙는 것도 괴로움이요, 병드는 것도 괴로움이요, 죽는 것도 괴로움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우리 인간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 늙고 병들어서 죽는 일, 즉 생로병사가 모두 고통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인생의 고통에는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령 원한 있는 자와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괴로움이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괴로움이요,() 구하지만 얻어지지 않는 것도 괴로움이니,() 요컨대 번뇌의 수풀 위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이 몸 자체의 존재가 괴로움이다.()14)이를 여덟 가지 고통()이라고 하는데, 괴로울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은 그 끊임없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우리를 엄습해오는 이 괴로움의 원인은 어떻게 해야 제거될 수 있을까? 이 부분은 다음에서 다뤄보도록 한다.

둘째, 집체()란 바로 현재 우리의 괴로움이 있게 된 원인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인간의 괴로움은 세 가지 좋지 않은 마음, 즉 삼독심() 때문에 일어난다고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세 가지 나쁜 마음이란 탐욕 · 진에()15) · 우치()16)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우치, 즉 어리석음이다. 이 근본적인 어리석음 때문에 남의 것을 탐하고 시기 · 질투 · 분노하는 그릇된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불교의 경전에서는 이 세 가지 나쁜 마음을 갈애()17)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이글거리는 번뇌의 불꽃에 얽매인 상태가 곧 범부()18)이며, 그러한 비극은 오직 멸체와 도체로서만 해결할 수 있다.

대승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대승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소승과는 달리, 자신의 해탈뿐만 아니라 이웃의 해탈에도 도움을 주고, 자신을 위하면서 또한 다른 사람도 위하는 불자를 말한다. 그림은 대승불교의 중요한 존재인 어떤 보살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6세기경 인도 아잔타 석굴의 벽화다.

셋째, 멸체()다. 알다시피 세 가지 나쁜 마음의 불꽃을 끈 상태를 열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열반이란 니르바나(Nirvana)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으로서 ‘끊어낸다’ ‘끊어 없앤다’의 뜻을 가진 말이다. 번뇌를 가라앉히고, 아울러 다시는 그것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게 되었다는 표현이다. 여하튼 석가모니 당시에는 열반이라는 말의 의미가 나중에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적극적인 의미보다는 ‘그릇된 것을 끊는다’고 하는 소극적인 의미로 쓰인 듯하다.

넷째, 도체()라고 하는 진리다. 우리가 고통을 벗고 해탈에 이르기 위해서는 여덟 가지의 바른 길, 즉 팔정도()의 길을 걸어야 한다. 여기에는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말,() 올바른 행동,() 올바른 직업,() 올바른 노력,() 올바른 기억,() 올바른 자기 몰입()이 있다.

이것은 다시 삼학()으로 불리는 혜() · 계() · 정()으로 나누어진다. 여기에서 혜란, 우리의 정신 훈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가장 지혜로운 마음 상태를 말하는데, 팔정도 가운데 올바른 견해와 올바른 사유가 이에 속한다.

그리고 계란, 우리가 해서는 안 될 계율을 가리키는데, 팔정도 가운데 올바른 말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직업이 이에 속한다. 또한 정이란, 마음의 깨끗함을 얻기 위한 일종의 준비 작업을 말하는데, 팔정도 가운데 올바른 노력과 올바른 기억과 올바른 자기 몰입이 이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혜 · 계 · 정을 갖춰 정진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긴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후세 불교학자들이 가장 중요시한 것은 혜()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실제 수양의 뿌리가 되는 일종의 ‘깨달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깨달음이 없다면 남은 두 가지 역시 일어날 수 없다. 이 세 가지는 불교에서 가장 강조하는 실천 윤리의 덕목으로서, 이후 모든 교리의 근본이 되었다.

열두 가지의 단계, 연기

물은 액체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눈이나 얼음 같은 고체가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기체가 되어 공기 중에 증발하기도 한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물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변화의 법칙을 잘 관찰해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어떤 사물을 관찰할 때 밖으로 나타나는 현상만을 관찰할 것이 아니라, 사물의 보편타당한 본질을 파악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관찰 방법을 불교에서는 연기관()19)이라고 부른다. 연기관은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것인데, 사물의 본질은 발전하기 마련이므로 결국 연기관이란 사물의 발전 법칙을 고찰하기 위한 방법인 셈이다.

발전이란 사물이 어떤 상태에서 새로운 상태로 옮겨가는 과정을 의미하며, 다른 말로 하면 어떤 원인()으로부터 어떤 결과()를 맺는다는 것을 뜻한다. 보통 사람들은 이것을 인과율이라 불러 원인과 결과만을 논하려 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어떠한 사물이라도 인과 연()이 합쳐져야 하나의 새로운 결과를 낳는다고 해석한다. 인이 가지고 있는 발전력이 연의 협력을 얻었을 때, 비로소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을 직접적 원인이라고 하면 연은 간접적 원인에 해당하는 셈이다.

우리가 만일 발전의 근원을 인에서만 찾는 경우, 인 가운데에 이미 과()가 결정되어 있는 것이므로 결정론적 발전관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인과 연의 결합에 의해 발전이 이뤄진다고 할 때에는 현재의 인이 아무리 나빠도 그에 결부되는 연의 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좋은 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여기에서 불교의 교리는 결정론을 벗어날 수 있다.

고통의 세계를 이상의 세계로, 또 사바세계20)를 극락정토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는 불교 입장에서는 단순한 인과율이 아니라 인연에 의한 발전관을 반드시 선택한다. 연기설은 모든 삼라만상이 서로 의존하는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을 주장하는 사상이다.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결코 고정되어 각기 독립된 어떤 실재가 아님을 말한다. 그러므로 연기설은 제행무상 · 제법무아 · 일체계고라는 삼법인의 근본 입장과도 완전히 일치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설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곳은 인간세계이므로 연기설은 불교의 인생관이기도 하다. 석가모니는 고통의 실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것의 해탈을 목적으로 집을 나섰으며, 보리수 아래에서 정신을 모아 수도에 매진했다. 그렇게 해서 모든 현상이 시간적 · 공간적 인과관계에 의해 일어남을 깨달은 것이 연기설이고, 이것을 다시 열두 개로 나누어 설명한 것이 십이()연기설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십이기(), 즉 12인연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기에서는 윤회하며 고통받는 어리석은 중생이 태어나기 전부터 마침내 이 세상에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을 열두 단계로 구분해 설명하고 있다.

<육도윤회도(六道輪廻圖)>

<육도윤회도()>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인간 · 천상의 경계를 나타낸 그림. 그림 가운데 있는 닭은 탐욕(), 뱀은 진에(), 돼지는 무지()를 나타내며 그 주위에는 윤회를 관장하는 염라대왕이 그려져 있다.

먼저 모든 중생이 근본적인 어리석음,() 즉 어둠 속에 빠져 있는 단계가 있고, 그다음에 그러한 단계를 벗어나 비로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발동하는() 과정이 있으며, 그다음으로 무명의 단계에서 행했던 데 대한 업보가 어머니 태 안에서 부쳐지는 단계()가 있다.

이어서 땅() · 물() · 불() · 바람()의 네 가지와 수상행식21)의 네 가지가 한데 어울려 정신과 육체가 만들어지는 명색()의 단계가 뒤따르고, 눈 · 귀 · 코 · 혀 · 몸 · 뜻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빛과 소리, 냄새와 맛, 감촉과 법을 받아들이는 단계가 있으며, 그다음으로 우리의 몸이 밖의 여러 가지 사물을 접촉하는 단계()가 있다.

뒤를 이어 인생의 희로애락을 달게 받아들이는 단계(), 괴로운 것을 피하고 사랑스러운 것을 취하는 본능적인 욕망이 발동하는 단계()가 있으며, 자기를 내세워 사람을 취하는 단계()가 있다.

그리고 애()와 취()로 인해 새 생명의 씨앗을 장만하는 유의 단계()를 지나, 직접 몸을 입고 살아가는 삶의 단계(), 그리고 늙어서 죽어가는 단계() 등이 뒤따른다. 그런데 이 열두 연기를 관찰하는 방법에는 크게 보아 다음의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열두 가지 현상 사이의 인과관계를 조금 전 보았던 것처럼 무명()에서 시작하여 노사()까지 이어가는 순관()이다. 이 방법은 맨 처음의 원인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고통이 나오게 되는지를 시간적 순서에 따라 관찰하는 방법이다. 둘째는, 이와 반대로 결과인 노사에서 출발하여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근본적 원인으로서의 무명에 이르도록 하는 역관()적인 방법이 있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관찰하여 그로부터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탐구하여 올라가는 방법이다. 석가모니가 집을 나선 까닭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생로병사의 비극적 현실을 목격하고, 어떻게든 그 참된 원인을 밝히고자 했던 것이다.

불교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결국 모든 중생들이 윤회를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회란 어떤 상태일까? 그것은 영원히 죽지 않은 채 각자가 지은 선악업보에 따라 지옥 · 아귀 · 축생 · 인간 · 천상 · 수라 등 여섯 가지의 서로 다른 세계에 각기 달리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지옥은 화를 잘 내는 중생이 태어나는 곳이고, 아귀는 탐욕을 부리는 중생이 태어나는 장소이며, 축생은 어리석은 중생이 태어나는 곳이다. 결국 이 세 곳은 악한 중생들이 태어나는 곳에 해당하는 셈이다.

반면 인간은 바른 마음을 가진 중생이, 천상은 선한 중생이, 수라는 투쟁심이 강한 중생이 태어나는 곳이다. 이 세 곳은 그래도 지조가 있고 정의를 지키며 착한 일을 한 사람들이 태어나 즐거움을 누리는 곳이기 때문에 좋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비교적 좋은 곳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성현들의 가르침을 본받아 계율을 잘 지키고 악행을 피하며 선행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좋은 곳에 태어난다 할지라도 윤회는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누릴 만한 복이 다하면 결국 다시 타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진리 본문 이미지 3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 인간이 영원한 윤회를 벗고 생사를 초월할 수 있을까? 그를 위해서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혜 · 정 · 계 등 세 가지를 잘 닦아 깨닫는 자, 즉 부처가 되어야 한다.

부처의 제자들과 다섯 가지 계율

불교의 초기 교단에 속하는 사람은 누구나 불법승 삼보()에 귀의할 것이 요구되었다. 다시 말하면, 당시 불교 신도가 되기 위해 누구든지 세 가지에 돌아와 의지할 것을 맹세하도록 했다는 뜻이다. 불()이란 불교를 최초로 연 교조 불타를 말하고, 법()은 그 불타가 가르친 교훈, 그리고 승()은 그 교설을 실천하는 승려를 가리킨다. 그래서 신자가 되려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암송을 계속해야 했다.

불교의 진리 본문 이미지 4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그런데 왜 이것들을 보배(삼보)라고 부를까? 그 이유는 이것을 믿고 잘 실천하면 세상의 정신적 · 물질적 가난을 없애주는 보배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초기 교단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출가한 남자 수행승인 비구중이었다. 그런데 출가수행자가 되려면 먼저 부모님께 승낙받고, 스승을 선택하여 5계, 10계, 250계 등을 받아야 했다.

여인에게 출가가 허락된 경우는 석가모니의 이모인 마하파사파제가 최초였다. 부처는 그녀의 출가를 허락하고 나서도 비구니에게만큼은 훨씬 엄격한 규칙과 율법을 요구했다. 가령 비구니는 348계를 받아야 한다는 사항 등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부처의 열 제자 가운데 한 명인 아란()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다.

아란을 열렬히 사모하던 한 여인이 출가를 간절히 청했다. 하지만 부처는 여러 차례 이를 거절했다. 그 후에 여인의 출가가 허락되었는지, 아란은 부처가 입멸한 후에 열린 장로회의에 그만 참석이 금지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부처님께 간청하여 여인의 출가를 허락하게 하면서 불교의 법이 뿌리내리는 기간을 오백 년이나 늦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로 미뤄 짐작해보건대 원시 교단에서 여자 승려, 즉 비구니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남자 승려, 즉 비구승 중심의 승단 체제는 부파소승()22) 시대까지 계속되었는데, 후기 대승운동이 일어나면서 출가한 사문(S’ramana)23)들의 독단적인 우월의식은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어쨌든 당시의 인도 사회에서 집을 나서는 일이란 하나의 관습이었고, 이들에 대해 사람들은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문이라 불렀다. 이는 정통파의 수행자인 브라만에 대해서 비정통파에 속하는 모든 종교 수행자들을 포괄하여 부르는 말이다. 따라서 불교의 비구니들도 넓은 뜻으로는 사문에 포함된다. 그들은 속세적인 사랑이나 욕망에 가득한 생활에서 벗어나 혼자 몸으로 걸식하며 사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탁발로 목숨을 부지하고 항상 세 가지 옷과 공양 그릇인 바리때 외에 아무것도 몸에 지니거나 저축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그것은 교조인 석가모니 자신이 지킨 불문율이기도 했다. 출가수행자들이 머리를 깎는 것은 모든 번뇌를 끊어버리겠다는 정신적 의지를 상징한 것이고, 법복을 입는 것은 중생의 복전()24)을 표하는 동시에 자신의 각오를 표현한 것으로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사문은 암자나 큰 나무 아래서 좌선하기도 하고, 산속 동굴에 머물면서 정사()25)를 지어 집단생활을 하기도 했다. 특히 인도의 남방 기후 때문에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에는 외출할 수 없어서 사문들은 한곳에 모여 생활하며 자기 자신의 수행에 전념했는데, 이를 안거()26)라고 불렀다.

이러한 공동의 집단생활은 자연히 엄격한 규율을 필요로 하여 출가승에게는 기본적으로 오계()가 요구되었다. 다섯 가지 계율이란 살생하지 말고() 방생하는 것, 도적질하지 말고() 보시하는 것, 간음하지 말고() 청정을 지키는 것, 헛된 말을 하지 말고() 참말만 하는 것, 술 마시지 말고() 정신을 맑게 하는 것 등이다. 이 계율은 결혼하여 집에 머무는 신도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데, 다만 ‘간음하지 말라’가 ‘부부관계 이외에 사사로이 다른 사람과 간음하지 말 것’()으로 바뀌는 것뿐이다.

부처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그때그때 경우에 따라 직접 그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면 되었기 때문에, 사실 따로 계율을 제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부처가 입멸한 후에는 계율을 제정할 필요성이 생겼고, 비교적 가벼운 48계율과 비구의 250계율과 비구니의 348계율이 나오게 된 것이다. 만약 계율을 지키지 못했을 때에는 정해진 법회에 나가 참회하고 따로 지도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계율 파괴, 즉 파계에 대해서는 가장 무거운 벌로서 바라이(), 즉 다시 말하면 교단에서의 추방이 선포되었다.

부처는 종교의 파벌의식을 떠나 진리가 보편적인 것임을 밝히면서 많은 신도들을 가르치며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초기 교단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끼친 요인으로서 그의 열 제자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바로 사리불 · 목건연 · 대가엽 · 아리루다 · 수부티 · 부루나 · 가시연 · 우파리 · 라훌라 · 아란 등인데, 교단의 신임을 받던 사리불과 목건연은 스승인 부처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제3제자였던 대가엽에게 불교 교단의 지도 통솔 책임이 넘어가고 말았다.27)

한편, 불교 경전을 편찬하는 일에는 우파리와 아란의 공적이 많았다. 불교 재단은 당시 이미 공동 재산을 가지고 있었으며, 안거하는 장소를 기꺼이 희사()하는 신자들의 덕택으로 장원()28)과 정사()를 갖게 되었다. 당시 중요한 의식으로는 보름날과 그믐날에 함께 모여 서로 참회하는 보살()과 여름철 안거의 마지막 날에 서로 훈계하는 자자()29)가 있었다.

반세기에 가깝도록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불법을 전한 부처의 가르침은 신자들의 암송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전해지기 위해서는 일정한 형식으로 틀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결집()30)이 열리게 되었다. 제1결집은 부처가 입멸한 바로 다음, 가섭을 중심으로 오백 장로들이 왕사성의 칠엽굴()에 모여 집회를 열고 경전과 율법을 펴내면서 이뤄졌는데, 여기에서 바로 대장경()31)이 만들어졌다.

왕사성의 터

왕사성의 터석가모니가 살던 시대의 강국인 마가다의 수도다. 라자그리하(Rājagrha)라고도 한다. 유적은 부자() 두 왕이 축조한 구성()과 신성()으로 되어 있다. 산의 능선을 따라 돌로 쌓은 40킬로미터의 ‘외성벽’과 7킬로미터의 ‘내성벽’이 둘러싸인 기리브라자(산성)와, 북쪽 교외의 평야에 신왕사성지가 있다. 석가모니가 중생을 제도한 중심지로, 불교에 관한 유적이 많다.

제1결집이 있은 지 약 백여 년 후, 갠지스 강 북쪽의 베사리에서 밧지족 출신 비구들이 열 가지 일()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것은 주로 계율에 관한 것으로서, 예컨대 소금을 비축해놓는 일이라든가 화폐를 갖는 일 등 시대의 변화에 따른 문제들이었다. 특히 밧지족 비구들은 돈을 갖는 문제에서 전통적인 보수파의 장로들에 대해 정면으로 충돌을 일으키며, 장로파 비구 칠백여 명이 제2결집을 소집했다.

결국 장로들은 열 가지 일을 세밀하게 검토한 끝에 그것이 정통적인 불법에서 벗어난 것임을 정식으로 선언했고, 이로부터 교단은 보수적인 상좌부()32)와 진보적인 대중부()33)로 나뉘게 되었다.

석가모니의 인품

석가모니의 사상이 갖는 의의를 네 가지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첫째는 실천적 윤리로서의 중도()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중도란 두 가지 극단을 피한다는 의미다.

“비구들아, 여기에 출가자들이 피하지 않으면 안 되는 두 가지 극단의 길이 있다. 첫째는 야만적이고 비열한 욕심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어리석고 이익 없는 향락의 생활이요, 둘째는 헛되이 몸을 괴롭히며 학대하는 고행의 생활이다. 이 두 가지 극단의 생활을 떠나서, 여래에 의해 깨달은 마음의 눈을 열고 지혜를 점점 더 높여서 적정과 열반으로 이끄는 중도의 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의 바른 길, 즉 팔정도니라.”

이것은 당시 풍조에 따라 열심히 고행에만 몰두하는 수련 집단이나 향락적 쾌락주의에 빠져버린 퇴폐주의자를 모두 물리쳐야 한다고 하는 석가모니의 새로운 가르침이었다. 출가자가 피해야 할 두 가지 극단이 고행과 향락이라면, 속세에 머무는 자들이 피해야 할 두 극단은 가난과 분에 넘치는 부유다.

그런데 사실 사상적으로 당시 인도 사회를 지배하던 것은 전변설()34)과 적추설이었다. 이에 인도인들이 문제 삼았던 것은 “세계는 유한한가, 아니면 무한한가?”라든지 “과연 업에 의해 인간의 내세가 결정되는가?”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관심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하나에서 많음()이 생겨났다고 보는 정통 브라만의 입장인 전변설과 일반 철학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많음()에서 많음()이 생겨난다고 하는 적추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이를 모두 부정하고 인연설을 주장했다. 모든 것은 인연에서 생겨나며, 모든 삼라만상은 인연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석가모니는 어느 편에도 치우침이 없는 중도를 제창했다.

석가모니 사상의 두 번째 특징은 평등주의에 있다. 사회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석가모니의 등장은 브라만 계급을 매우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즉 브라만 성전을 절대시하는 승려족의 권위에 대해 이미 그 이전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던 반항운동이 석가모니를 통해 좀더 직접적으로, 노골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베다》 경전의 권위나 브라만 지상주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태어날 때 혈통에 의해 신분이나 계급이 정해진다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오직 자기 자신의 수행에 의해서만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석가모니는 실제적으로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인간의 고통을 깊이 통찰하고서 누구든지 그것을 극복하면 창조적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그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평등한 존재로 선언했던 것이다. 사실 붓다 또는 부처라는 말 자체도 ‘깨달은 자’, 즉 각자()라는 뜻을 갖는 단어로서, 인간이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의미를 그 안에 담고 있다.

세 번째, 석가모니의 사상은 세계주의적인 휴머니즘에 입각해 있다. 불교는 국수주의()35)적 수준을 넘어서서 초계급적 · 초국가적으로 그 교리를 확장해나감으로써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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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석가모니는 겸손한 구도자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는 결코 진리를 자처하지 않았고, 스스로 신격화되는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의 교리는 한 번도 도그마(dogma)36)로 강요되지 않았다. 브라만의 성전들이 귀족어인 산스크리트어 위주로 쓰인 데 비해, 불교의 경전은 당시 대중적 통속어인 프라크리트어로 쓰였다.

교조인 석가모니의 겸손한 자세는 이후 불교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가령 불교의 역사에서는 다른 종교와 비교하여 순교자가 적다거나, 불교가 절대자에 의존하는 타력() 중심이 아니라 자력 위주의 신앙으로 발전해갔다거나 하는 것은 모두 그 때문이다.

이처럼 불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해간 데에는 교조의 겸허한 자세가 불러오는 개방과 관용의 덕이 큰 몫을 했는데, 인간 붓다에 대한 신격화 작업은 그가 죽은 후 이백여 년 사이, 즉 소승불교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던 시대에 빚어진 일이었다.